내가 제목을 "법을 우습게 보는 사람들의 나라"라고 쓰면 그것은 좀 과장된 표현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내가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조차 법을 지키는 것이 우스워서 그렇지 않나 하는 생각이 동시에 들기도 한다.
이 글을 쓰려는 이유는 최근에 일어나고 있는 일련의 일들에 대한 시각을 공유해 보고 싶어서이다.
학교폭력 - 대구 중학생, 대전 고교생
우리나라 뿐 아니라 세계 어느나라든 학교폭력은 없어지지 않는 문제이다.
아이들이 단순히 싸움질 하는 것에서 부터 일본에서 유행되어던 이지매라는 집단 따돌림 그리고 요즘에는 특정 학생이 특정 학생을 집요하게 괴롭히는 폭력까지 학교 폭력은 잡초처럼 계속 생기고 변한다.
나는 학교폭력이 있는 것 자체가 문제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학생들 사이에서 트러블이 일어나는 것은 어찌보면 피할 수 없는 필연적인 것이다. 어른들도 피튀기게 싸우는 일이 많은데 정신적으로 성숙하지 못한 학생들이 싸운다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내가 보는 문제는 그 문제들을 대응하는 부모, 학교나 기관 등 관리해야 하는 곳들의 태도라고 본다.
우리나라 어른들은 학생들끼리 싸우면 애들 싸움이라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어른들이 생각하는 별거아닌 애들 싸움은 단순히 애들싸움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 싸운 아이들은 졸업할 때까지 계속 같이 얼굴을 맞대고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건 피해자에게는 고통이 된다. 그리고 싸움을 넘어선 일방적인 폭력이나 집단 괴롭힘은 피해자 학생의 운명을 바꾸어 놓을 정도로 심각한 문제라는 것은 누구나 다 인식하고 있을 것이다.
피해자 입장에서 한번 보자.
폭력을 당하는 학생은 자신을 때리거나 괴롭히는 가해자를 매일 봐야 한다. 당신이 피해자라면 기분이 어떨것 같은가? 그리고 폭력은 또다른 폭력을 부르고 폭력은 뿌리채 뽑지 않으면 계속 폭력의 알을 낳는다. 매일 맞는다면 어떻겠는가? 학교에 공부하러 가는것이 아니라 맞으러 가는것이라면 당신은 어떻겠는가? 학교에 친구들과 재밌는 추억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경험하고 싶지 않은 일들을 겪으러 가게 되는 것이라면 어떻겠는가?
당신의 자녀, 친척, 동생이 이렇다면 어떻겠는가? 애들 싸움이라고 넘길 수 있는가?
육체적으로 당한 고통은 단순 육체적 상처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정신적인 상처는 평생을 가도 그 어떤 항생제나 연고로도 치료할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것은 인간의 정신을 피폐하게 만든다.
자 다시 본론으로 들어가서, 이러한 학교폭력에 대응하는 학교와 교육자의 자세는 아주 어이없고 우습다.
위에서 언급한 애들 장난으로 취급하기도 하고, 근거나 증거나 없다는 식의 덮어버리기가 일쑤이며, 오히려 그것을 잘못 관리한 자신들의 문제가 드러날까봐 전전긍긍한다. 다시 생각해도 우습다. 교육자나 교육을 관장하는 기관이나 교육이라는 단어의 뜻을 모르는 것 같다.
나는 그래서 네이버 사전에서 교육이라는 의미를 찾아 보았다. "지식과 기술등을 가르치며 인격을 길러줌" 이거라고 한다.
단순히 가르치는 것을 떠나 인격적으로 사람의 됨됨이를 갖추도록 해주는 사람이 교육자라고 한다.
교육자가 잘못을 덮어버리거나 세상의 어려움과 타협을 하면 그것은 교육이 아니다. 그런 사람들은 교육이라는 행위를 해서는 안된다.
교육자는 이 세상의 올바른 가치를 자신이 가르치고 전달해야 할 학생들에게 어떻게든 잘 전달이 되도록 노력하는 사람들이어야 한다.
월급이나 받고 선생이라는 소리들으려고 교육자 명함을 가지고 다니는 사람들은 다 때려쳐야 한다. 영원히 자격을 주지 말아야 한다.
선생님들은 말한다. 체벌도 못하고, 학원교육으로 학교교육은 무너졌으며, 아이들은 선생 보기를 우습게 안다고...
아이들이 왜 그러는지 생각하보라. 그건 결국은 다 그런 대접을 받는 선생님들이 자초한 일일것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학교와 선생님들 스스로가 그들의 권위를 떨어뜨리지는 않았는지 생각해보라. 그리고 그 자신들 안에 답을 찾으려고 고민하고 노력해보라.
자신이 아닌 외부적인 요인에 의해서 이러한 부정적인 현상들이 일어나고 있다고 한숨만 쉬고 남의 일인양 넘어간다면 그런 선생님들은 평생 이러한 대접이나 상황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내가 선생이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이렇게 쉽게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오해했다면 오해말길 바란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요지는 이러한 학교나 교육자가 무기력한 상황을 방치하거나 타협하면 안된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그리고 피해자나 가해자 모든 아이들의 이야기에 귀기울이고,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에 맞게 해야할 행동이 있다면 해야한다. 그리고 이러한 폭력이나 악습에 대하여 아주 강경하게 대응하고 교육자로서의 의지를 보여줘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교육자를 존경하고 인격적으로 더 성숙한 사람이라고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이 사람을 가르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 그 어려운 일을 하시는 분들은 무언가 다른 수준의 의식과 행동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럼 이러한 사건을 대하는 해당 부모들의 자세는 어떠할까?
솔직히 가장 문제는 이 부분이다. 아이들의 근본적인 문제는 부모에게 있다. 그 아이들이 어떠한 생각을 하고 어떠한 결정을 하고 행동을 하는지에 대한 모든 기준은 어려서 부터 부모에게서 보고 배운 것이 대부분일것이기 때문이다. 부모가 없는 아이들의 경우는 그들이 같이 자라온 어른들이 그 역할을 할 것이다.
부모들의 행동은 대부분 자기 자식 감싸기이다.
가해자의 부모들은 잘못은 인정하나, 역시 성숙하지 못한 아이들의 판단 실수나 순간적인 충동등 가능하면 문제를 축소하려는 경향이 대부분이다.
심지어는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부모들도 많다. 자신의 아이는 오히려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부모도 있다.
이런 부모옆의 가해자 아이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자.
자신은 분명히 폭력을 휘두르고 다른 아이에게 상처를 주었다. 그런데 부모가 와서 자신을 열렬히 항변하고, 자신의 잘못을 축소시킨다. 오히려 상대를 압도하기도 한다. 돈으로 문제를 해결하기도 한다.
아이(아이라고 하지만 학생들)는 잠깐 혼란스러울 것이다.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일이 안 커진다. 뭐 대충 정리가 된다. 그리고 다음에 비슷한 일을 또 한다. 또 넘어간다. 내성이 생긴다. 점점 폭력에 무덤더해 진다. 더욱 더 강한 폭력이 이어진다.
완벽하게 잘못된 case의 부모역할이다.
자신의 아이가 잘못되길 바라는 부모가 어디있겠는가? 그런 생각이 내면에서 오히려 잘못 해석되어 자신의 아이가 벌을 받는것을 거부하는 부모들이 많다. 잘못하면 벌을 받고, 잘하면 칭찬을 받는 것을 생활에서 가르쳐주는 역할이 부모의 역할이다. 그것이 결국은 자신의 아이가 나이가 들어 성인이 되어 성공할 수 있는 정신적인 유산이 되는 경우가 많다고 본다.
가끔 어린 아들과 키즈카페에 가면 다양한 성격의 아이들이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불편한 성향의 아이는 키즈카페에 있는 장난감이 다 자기것인양 가지고 다니거나 다른아이의 장난감을 아무런 감정없이 뺏어서 자기가 가지고 노는 아이들이다. 그리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자기에게 방해가 되는 아이들이나 만만해 보이는 아이들에게 물리적인 행동을 하는 아이들이 키즈카페 같은 곳에서는 가장 불편하다.
아이들은 그럴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여기서 문제는 자기 아이가 다른아이가 가지고 노는 장난감을 뺏거나 다른 아이에게 불편을 끼쳐도 웃어주거나, 심지어는 잘했다고 하는 부모들이 있다. 이런 부모들의 심리는 자기 아이가 다른 아이에게 밀리지 않거나 오히려 압도하고 있는 상황이니 마냥 좋은거다. 쉽게 말해 자기가 손해보는 상황이 아니니 문제없다고 판단하는거다.
그런 부모의 반응을 본 아이들은 자신들의 행동에 더욱 정당성을 부여한다. 결국은 문제가 있는 행동을 문제가 없는 행동으로 인식한다.
나는 가끔 이런 아이나 부모에게 한마디 하기도 한다. 그러면 반은 미안하다고 하거나 반은 인상을 찌뿌린다. 아마 대부분 인상을 찌부리고 싶으나 내 인상이 좀 험학해서 다 그렇게 하지는 못하는 것 같다.
위 case는 부모의 아이에 대한 행동이나 가르침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아주 현실적인 예라고 생각한다.
부모는 아이들의 거울이다. 자신의 아이가 잘 성장하길 바란다면 아이가 저지른 잘못은 잘못으로 인정하고 교정하도록 도와줘야 한다.
이번엔 교육기관이나 정부기관, 사법기관등의 대응은 어떤가?
이들도 역시 위 두 부류와 비숫한 생각이다. 일반적으로 우리나라의 경찰, 법원등은 이러한 학교폭력에 대하여 아이들끼리의 싸움으로 치부한다. 그리고 학생이라는 이유로 사법권 행사를 안하신다. 법적으로 청소년들을 보호하는 제도가 있기는 하지만, 그것은 정황이나 그 정도를 보고 결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기관들은 어떤 경우이든 별 심각한 대응을 하지 않는다.
더 웃긴건 가해자들의 인격, 학습권등 가해자들의 권리를 주장하기도 하고, 피해자들은 피해본 건 어쩔 수 없으니 알아서 잘 해결해라 라는 식의 결론들이 많았던 것 같다. 이건 오히려 법이 가해자들의 가해행위를 옹호하고 부추기는 꼴이 되고 만다.
가해자의 권리보다 중요한 것은 그전에 지켜야할 법을 지키고 사수하는 것이다.
그리고 기관들은 이런 일련의 사건들을 대응 할 때 여론이나 소셜네트웍을 통해 전파되는 실제 여론등에 너무 민감하게 반응한다.
이번 대국 중학생 사건도 개인여론이 들고 일어나서 사건이 이렇게 커져서 그나마 기관들이 대응을 이렇게라도 하고 있는 것이지, 만일 기성 미디어에서 기사로 쓰고 말았다면 이 사건도 아마 지금쯤 피해자의 울분속에 적당히 사라질 기로에 있었을 가능성이 높았다.
기관들은 여론이 아니라 자신들이 세워놓은 삿대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해야한다.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기준이나 원칙을 스스로 가볍게 여기면 사람들은 그 기관들을 더 우습고 가볍게 볼 것이다. 더 무서운 것은 여론에 허둥대는 기관들을 보면 그 여론은 더욱 기관을 허둥대게하고 자신들의 이권을 위해 여론은 조장할 것이다.
제발 원칙을 지키고 법을 지키는 것을 국민들에게 요구하지 말고, 기관들 스스로 더욱 가혹하게 자신들의 원칙을 고수해야 할 것이다.
폭력을 휘두르는 학생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은 또다른 폭력을 낳게 되고 더 무서운 것은 이런 학생들은 어려서부터 폭력에 무덤덤하게 된다는 것에 있다. 이런 학생들이 크면 암묵적인 폭력은 끊이지 않고 성인이 되어서도 이어진다. 그리고 여전히 그들의 머리속에는 법 보다는 주먹이 앞서게 된다.
내가 생각하는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법을 지키지 않는 것에 대한 처벌은 법에 의해 엄하게 수행되어야 한다. 그것은 어른이건 학생이건 예외를 두어선 안되다. 학생은 어린 나이이고, 교화될 가능성이 높아서 처벌을 가볍게 하는 것은 일부 이해가 되나, 그것을 가볍게 치부하여서는 안된다. 학생들의 위치에서 가할 수 있는 최대의 처벌을 가해야 한다.
쉽게 말해 사람을 죽이면 그 사람은 사형을 시킨다거나, 남을 때리면 100배의 태형을 받는다거나, 법을 더욱 가혹하게 만들고 그것을 기관들이 스스로 완벽히 집행함으로써 미래 가해자들이 이를 인지하고 자신들의 행동을 스스로 교정하도록 원칙을 주입시켜야 한다.
그리고 당연히 이번 대구 중학생과 같은 사건은 법정구속하여 그 댓가를 정확히 치르게 해야하고 그것이 이 사회의 원칙임을 다른 학생들고 알게 해줘야한다.
그리고 학교 교실등 모든 장소에 CCTV를 설치해서 이러한 폭력을 감시하고 행해진 폭력에 대한 증거가 수집되어야 한다. CCTV는 사생활 침해라는 비난도 많지만 학생들이 학교에 해야할 일들만 한다면 CCTV는 전혀 사생활과 문제될 것이 없다고 생각된다.
이러한 물적 증거가 없으면 폭력에 대한 처벌은 점점 솜방망이가 되고 많다.
그래서 CCTV에 한대 때리는 것이 발견되면, 바로 경찰서가서 100대 맞고 나오는 것이다. 친구에게 협박 문자 보내면 그 학생의 부모는 사회 봉사활동 100시간 하는 것이다. 그리고 선생님도 이러한 일에 대응한 행동들을 면밀히 따져서 부족하다면 과감하게 정직을 시켜야 한다.
교사, 부모, 기관이 법을 우습게 보면 그건 단순히 그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우리의 미래를 짊어질 아이들도 같은 생각을 하게 된다는 것을 잊지말자.
정봉주 구속
나는 정봉주라는 사람을 전에는 몰랐고, 최근에 나꼼수등으로 이름을 몇번 들어 본 정도이다.
나꼼수 때문에 꽤나 인기가 있었던 것 같은데, 갑자기 구속이 되었덴다. 구속된 이유를 찾아보니 과거에 이명박관련 BBK 사건을 근거도 없이 주장했다고 한다. 그때는 국회의원이었다고 한다.
이건 좀 웃기는 상황인건 같다. BBK를 주장한 사람은 꽤 많았던 걸로 기억한다. 그런데 갑자기 정봉주만 잡혀간다.
사람들은 나꼼수가 유명해지고 설득력이나 파급력이 높아지면서 더 이상 이러한 정보나 여당에 해가 되는 행위를 못하도록 잡아간다는 거다.
정말 정봉주가 죄가 있어서인지 나꼼수때문에 정부가 손을 쓴건지 모르겠지만, 이러한 상황을 보면 법이 원칙이 있다기 보다는 필요에 의해 조합된다는 느낌을 지울수가 없다.
법원은 자기들이 있는 그대로 지켜야 할 법을 해석하고, 각색하여 자기들 입맛에 맞게 조합하여 집행한다는 느낌이 든다.
법을 잘 모르는 나같은 사람도 이렇게 느끼니 대다수의 국민들이 느끼기에 법이 얼마나 가볍게 느껴질까? 법이 각색하기 나름이라고 국민들의 머리에 인식이 되기 시작하면, 그것은 온갖 범죄도 각색하기 나름이라는 말과 같게 된다.
이상득 국회의원 보좌관
얼마전 이상득 국회의원의 보좌관이 46억원의 금품을 받은 혐의가 드러났다. 그리고 그 보좌관이나 이상득 의원도 그건 보좌관이 한 일이라고 한다.
이게 말이 되나?
일단 국회의원 보좌관이 돈을 그렇게 해 먹었다는 것에 너무나 비통함으로 느낀다. 이게 우리나라 국회정치의 현실이다. 국민의 투표에 의해서 당선된 사람, 국민의 세금으로 월급받고 활동하는 사람, 국민의 대변자로서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하는 짓이 이렇다. 이상득 의원이 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그 바로 직속 직원들에게 세상이 이렇게 대한다는 것은 그 위의 의원에게는 어떻게 대하는지 눈으로 보지 않아도 뻔한일이다.
돈을 주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이나 모두 자신들이 지켜야 할 법 같은것은 안중에도 없다. 그들에게는 돈이 법이다.
우리나라의 최고위층의 인물들도 법 보기를 이렇게 보는데 국민들에게 뭘 더 기대하겠는가?
이 국회위원들은 도데체 왜 법을 만든다고 국회에 들어가서 저러고 있는지? 그리고 그들은 왜 법을 만들었는지? 왜 만들어놓고 안 지키는건지?
다들 법을 우습게 보는 사람들이다. 법을 만드는 사람도 법을 우습게 보니, 그 법을 만들어 보지도 않은 사람들은 법을 지켜야 할 것으로 판단이나 할까?
김문수 119 및 권력층
김문수 도지사가 한건 제대로 했다. 119에 전화를 걸어 자기 이름을 말했단다. 아 멋지다. 자기 이름을 자신있게 말했단다.
119에 전화를 걸어 자기 이름 말하고 상대방 이름 물어 봤단다. 그리고 소방관이 무슨일이냐고 물어보니까 계속 자기이름 말하고 상대방 이름 물어봤단다. 완전 너무 웃겨서 오늘 아침은 관련 기사 보다가 엔돌핀이 너무 많이 나왔다.
우리나라의 고위 공무원과 권력층은 기본적으로 지켜야 할것에 대한 마인드가 없다. 자신들은 특권층이므로 국민들이 지켜야 할 것은 자기들과는 그리 관련되는 것아 아니라는 관념에 사로잡혀 있는 경우가 많다.
김문수 도지시가 119에 한 일이 이러한 일이다. 김문수 도지사가 119가 긴급전화인지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 전화가 긴급한 상황만을 위해 개설되어 있는 전화라는 것도 잘 알것이다. 문제는 그들은 그것을 지킬 마음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왜냐 그들은 자기들이 스스로 그 지켜야 할 것들보다 훨씬 위에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고위공무원도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데 대다수의 사람들은 어떨까 하는 걱정이 앞선다.
내가 예상컨데 앞으로 119 전화번호는 적어도 일주일은 자신이 김문수라는 전화가 불나게 많이 걸려올 것이다. 이것은 사람들이 행하는 대표적인 오류로 119로 장난전화를 하는 현재 자신들은 김문수를 비판하지만 자신들도 이러한 행위를 함으로써 뭔가 희열을 느끼는 것이다.
아동 성폭력
우리는 나영이 사건드으 끔찍한 수준의 아동 성폭력 사건을 많이 봐왔다. 그리고 그러한 성폭력은 계속 일어나고 있다.
동시에 보는 결과는 이러한 일을 저지른 성폭력범들은 계속 비슷한 범죄를 저지르고 있으며, 심지어는 우리사회의 구석구석에서 활동을 문제없이 하고 있다는 내용의 기사들도 많이 접한다.
정부는 성폭력범을 격리하거나, 발찌를 채우거나, 이름을 공개하는 것등 여러가지 조치를 취하고 있지만 이런 일련의 조치를 위할 때 보여주는 정보의 모습은 단호하지 않다. 행여나 반대 여론등이 일어나면 슬쩍 태도를 바꾸기도 하고, 없던일로 하기도 한다.
이러니 이런 사건이 계속 안 일어 나겠는가?
대전제인 아동 성폭력이 일어나면 안된다 라는 것에 반대하는 사람이 있는가? 그렇다면 그것을 예방하는 조치도 일부 반대여론이 있더라도 과감하게 추진해야 한다. 정부가 스스로 자신들이 집행해야 하는 법에 자신이 없다면 범죄자들은 그런 정부의 마음을 다 안다. 그래서 같은 범죄를 계속해서 저지르는 것이다.
우리는 왜 지켜야 할 것을 지키지 않는 것일까? 법을 지키고 지켜야 할것을 지키는 것이 자신에게 손해가 되는 일도 아닌데 왜 그것을 애써 우습고 가볍게 여기고 문제를 일으키는 것일까?
이유를 고민해 보았다.
첫째는 부모의 역할이 중요한 것 같다. 어려서부터 부모에게 올바른 생각과 행동 양식을 물려받아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자녀들에게 충분히 이러한 것들을 나눌 수 있는 여유가 없는 것 같다. 생활고에 많은 부모들은 맞벌이를 하고, 아이들은 닭장같은 어린이집에 모여서 자란다.
둘째는 교사들의 역할이 중요한 것 같다. 교사들이 사명감을 가지고 자신의 책임을 다하려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본다. 많은 교사분들이 이러한 사명감으로 교육전선에서 일하고 있지만 이것은 한명도 예외가 있어서는 안될것이라 판단된다.
셋째는 나라의 역할이다. 기관이나 정부는 법을 지키고 실행하는 것에 투명하고 오차가 없어야 한다. 그리고 법의 기준으로 더욱 엄격하게 관리하고, 그것으로 인해 질서가 유지되도록 법을 지키고 유지하는 것에 가혹해야 한다.
결론적으로 집안과 밖 그리고 제도가 삼위일체가 되어야 우리는 진정한 법치주의를 이룰 수 있다.
법을 만드는 사람과 법을 집행하는 사람이 법에 대하여 느슨하면 법을 지켜야 하는 사람도 당연히 느슨하게 생각하고 판단한다.
모두가 법없이 살 수 있는 나라를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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